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문단 편집) === 세계 최초의 핵폭격기, 에놀라 게이 === 에놀라 게이(ENOLA GAY)[* [[동성애자]]를 뜻하는 그 [[게이]]와 철자가 같은데 애초에 gay라는 단어는 '명랑한', '즐거운'이라는 의미였기에 에놀라 게이라는 이름은 동성애자와는 상관이 없다.]는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B-29]]이다. [[미 육군]] 항공대 제509 혼성전대 제393 폭격비행대대 소속으로 기체 번호 44-86292. 기체의 심볼은 [[노즈 아트]](Nose Art)로 새겨진 기수의 ENOLA GAY와 수직 미익(꼬리 날개)의 R.[* 원래 393 폭격비행대대의 수직 미익 심벌은 동그라미 안의 화살표였다. 원자폭탄 투하 작전을 앞두고 일본군을 교란하기 위해 수직 미익 심벌을 바꾼 것이 동그라미 안의 R 표식이다.] 멘해튼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원자폭탄 Mk-1 코드네임 [[리틀 보이]]의 모기(母機)이다. || [[파일:b29_65.jpg|width=100%]] || || B-29 "Enola Gay" 일련번호 44-86292, 티니안 North Field 주둔, 1945년 || 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역 당시의 전형적인 무도장 은빛 기체 형상이다. 다만 에놀라 게이와 복스카는 제509 혼성 전대에서 운용한 이른바 '은쟁반 B-29(Silverplate B-29)'로서, 일반형 B-29와는 차이가 있다. 외견상으로 가장 큰 식별점은 은쟁반 B-29는 기체 후미 총좌를 제외한 모든 터렛 총좌가 제거되어 있다. 1945년 8월 6일 아침 히로시마 상공에 원자폭탄 [[리틀 보이]]를 투하하여 역사에 그 이름을 영원히 남겼다. 이름의 유래는 제509 혼성 전대의 부대장 폴 티비츠 대령의 어머니 이름(결혼하기 전의 이름)으로, 어린 시절 비행사가 되려 했던 그의 꿈을 북돋아줬던 어머니 이름을 따 'ENOLA GAY'로 명명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지만 여기에는 뒷이야기가 있다. 사실 폴 티비츠는 부대장이었고 이 기체의 기장은 아니었다. 기존에는 히로시마 임무 직전에 지휘관으로서 독단을 부려 원래 기장이었던 로버트 루이스 대위를 빼고, 히로시마 작전을 자신이 맡았다는 이야기가 국내에 많이 퍼져 있었으나 이는 최근에 국내에 알려진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부정된다. 폴 티비츠 대령은 제509 혼성 전대를 창설할 때부터 최초의 원자폭탄 투하는 자신이 담당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사람이고, 원자폭탄 투하 작전이 개시되기 직전, 즉 1945년 8월 4일의 최종 폭격 훈련에서도 원래 기장인 로버트 루이스 대위를 부기장 자리에 앉히고 자신이 직접 기장 자격으로 투하 훈련을 진행함으로써 본인이 원자폭탄 투하 작전에서 비행할 것임을 명확히 했다.[* 스티븐 워커, 위의 책, P. 218.] 애당초 폴 티비츠 대령은 전대 사령관으로서 부대의 B-29 15기를 모두 조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https://airandspace.si.edu/collection-objects/boeing-b-29-superfortress-enola-gay/nasm_A19500100000|#]] 물론 원래 기장이었던 로버트 루이스는 자신이 실제 폭격을 진행할 것으로 믿고 있었으므로 꽤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이 기체는 1945년 8월 5일, 그러니까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하루 전까지도 공식적인 기체명이 없었고 노즈아트도 없었다. 그냥 호출부호 '빅터 82'(Victor 82) 로만 불렸다. 그 날 저녁에야 폴 티비츠 대령의 지시로 Victor 82의 기수 부분에 ENOLA GAY라고 마킹을 한 것이다. 로버트 루이스 대위는 계류장에서 자신의 애기(愛機)에 커다랗게 칠해진 '에놀라 게이'라는 글자를 발견하고 "이런 염병할, '내' 폭격기에 도대체 무슨 짓을 해 놓은 거야?"라고 불 같이 화를 내었지만, '''[[까라면 까|예나 지금이나 군대는 계급이라]]''' 이미 에놀라 게이는 폴 티비츠 대령의 비행기가 된 이후였다. || [[파일:800px-Tibbets-wave.jpg|width=100%]] || || 출격 직전 에놀라 게이 조종석 창문에서 마지막으로 손을 흔드는 폴 티비츠 대령(1945년 8월 6일 새벽 2시 45분)[* 사진을 잘 보면 몇 시간 전 부랴부랴 페인트 칠을 한 흔적이 역력하다.] ||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에놀라 게이는 3일 뒤 나가사키 원폭 투하 작전에도 참가했다. 다만 이 때의 임무는 폭격이 아니라 [[기타큐슈|고쿠라]] 시에 대한 기상정찰이었다. 에놀라 게이는 2번의 원자폭탄 투하 작전을 성공리에 마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기체 보존이 결정되어 1946년 7월에 미국 애리조나주 데이비스몬산 기지로 이송되었다. 1946년 8월 육군항공대에서 제적되어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스미소니언 박물관 명의]]가 되었으며, 1953년 12월에 앤드류스 공군 기지에서 해체 보존되었다. 여기서 보존한 이유는 당시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Enola_gay_20040710_170220_1.4.jpg|width=100%]] || || 스미소니언 박물관 [[우드바 헤이지 센터]]에 전시 중인 에놀라 게이 || 2003년에 복원이 완전히 완료되어 현재 스미소니언 박물관 [[우드바 헤이지 센터]]에 전시되어 있다. 원자폭탄을 투하한 폭격기를 전시한다고 하여 그 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으며, 이러한 이유에서 에놀라 게이 전시 안내문도 논란을 피하기 위하여 최대한 기술적인 사양 및 간략한 설명 위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우드바 헤이지 센터에 가보면 B-29 에놀라 게이 밑에 [[J1N 겟코|나카지마 겟코]] 같은 일본의 기체들을 모아서 전시한다. 누가 보아도 다분히 의도적인 배치이다.] 나가사키에 [[팻 맨]]을 날린 비행기의 이름은 '복스카(Bockscar)'로 해당 B-29 기체의 기장인 프레드릭 복의 이름을 따왔는데, 정작 이 사람은 원폭 투하를 담당하지 않았다. 자세한 내용은 하단의 나가사키 작전 문단을 보면 된다. 이 기체는 현재 오하이오 주에 있는 미 공군 국립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에놀라게이 동체.jpg|width=100%]]}}} || || 에놀라 게이 앞부분에 쓰여진 '첫 핵폭탄 히로시마-1945년 8월 6일'[* 2022년 8월 첫 공개된 사진.] || 에놀라 게이의 마지막 생존자는 시어도어 밴 커크(Theodore Van Kirk)로 기체의 항법사였다.2014년에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